ARCHIVE

전체 글

생활에 필요한 정보부터 몰랐던 역사 이야기까지, 알아두면 좋은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합니다.

역사이야기

네 동생을 모두 잃은 왕비, 마지막엔 세종이 곁을 지켰다|원경왕후의 죽음

세종실록 · 1420년왕이 된 아들이마지막까지 곁을 지켰다1420년 7월 10일. 원경왕후가 세상을 떠났다. 실록에는 그날의 죽음보다, 곁에 남은 남편 태종과 아들 세종의 모습이 더 길게 남아 있다.1420.07.10 · 창덕궁 별전01 / 17마지막 날01COLD OPEN정오, 원경왕후가 숨을 거뒀다세종실록은 이날 낮 오시에 대비가 별전에서 훙했다고 기록한다. 향년 56세였다.그런데 마지막까지 곁을 지킨 사람은 이미 조선의 왕이었다.02SON그 왕은 세종이었다세종은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풀고 맨발로 통곡했다. 어머니를 잃은 아들이었지만, 그는 이미 한 나라의 임금이었다.이 장면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거의 50일의 간병03REWIND시간을 약 50일 전으로 돌린다다음 날 의정부와 육조는 세..

역사이야기

원경왕후의 네 동생은 왜 모두 죽었을까|태종과 민무구·민무질·민무휼·민무회

태종실록 · 외척과 왕권반란도 없었는데왕비의 네 동생은왜 모두 죽었을까민무구·민무질·민무휼·민무회. 네 사람은 군사를 일으켜 궁궐을 공격한 무장반란을 벌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태종과 조정은 이들을 세자를 중심으로 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외척으로 보기 시작했다.SCROLL태종 초 · 한양01 / 1501FAMILY처음에는, 한 가족이었다원경왕후 민씨에게는 네 명의 친남동생이 있었다. 민무구·민무질·민무휼·민무회. 네 사람 모두 남성이며, 세자 이제에게는 외삼촌들이었다.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적이었던 외척’의 이야기가 아니다.02ABDICATION1406년, 태종이 왕위를 넘기겠다고 했다태종은 세자 이제에게 왕위를 넘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신들의 만류 끝에 전위는 철회됐고 태종은 다시 정무로 돌아왔..

역사이야기

“우리 형을 보거든 화살을 쏘지 마라”|이방원과 제2차 왕자의 난

조선실록 이야기 · 1400형이 군사를 일으켰다,그런데 이방원은 형을 쏘지 말라고 했다정종에게 적자가 없던 시기, 형 이방간과 동생 이방원은 개경 한복판에서 실제 군사를 맞붙였다. 그런데 승부가 갈리던 순간 이방원은 휘하에 뜻밖의 명령을 내렸다.SCROLL1400 · 후계 문제STORY 01 / 1401SUCCESSION왕은 정종이었다.그런데 모두가 다음 왕을 보고 있었다정종에게 적자가 없었다. 《정종실록》은 당시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정안공 이방원이 세자가 될 것이라고 여겼다고 기록한다.왕위 계승 문제는 이미 왕실 내부의 공기가 되어 있었다.02HEIR남재는 공개적으로 이방원을 세자로 세우자고 했다실록에는 남재가 대궐 뜰에서 이방원을 세자로 삼아야 한다고 크게 말했고, 이방원이 이를 듣고 크게 노해 꾸짖..

역사이야기

“몽주는 죽이지 않을 수 없다”|이방원이 정몽주 제거를 결심한 날

조선실록 이야기 · 1392“몽주는 죽이지 않을 수 없다”이방원이 정몽주 제거를 결심한 날이성계가 낙마해 병이 위중해진 사이, 정몽주는 조준·정도전 등 이성계 세력을 공격했다. 아버지는 정몽주 살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방원은 다른 선택을 했다.SCROLL1392 · 이성계 낙마STORY 01 / 1401BEFORE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졌다고려 말, 이성계가 낙마해 병이 위중해졌다. 그가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정국은 급격히 흔들렸다.정몽주에게는 이성계 세력을 밀어낼 수 있는 시간이 열렸다.02PRESSURE정몽주는 조준·정도전 등을 겨눴다태조실록 총서는 정몽주가 대간을 움직여 조준·정도전 등의 처벌을 요구했다고 기록한다. 이성계 쪽에서는 집안 전체가 공격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이방원은 아버..

역사이야기

조선을 함께 세운 아버지와 아들, 왜 원수가 됐을까|이성계와 이방원

JOSEON STORY조선을 함께 세운 아버지와 아들,왜 원수가 됐을까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우는 동안에는 같은 편이었다. 하지만 조선이 세워진 뒤, 세자 책봉과 병권을 둘러싼 갈등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이성계 · 이방원 · 1392~1398SCROLL STORY 01 / 06 01같은 편이었다새 나라를 만들 때까진,두 사람은 한편이었다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우는 동안, 이방원은 아버지의 가장 적극적인 정치적 조력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두 사람은 같은 나라를 만들고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새 왕조가 세워진 뒤, 모두가 같은 질문을 보게 된다.다음 왕은 누구인가?021392년 8월 20일세자는 이방원이 아니라,이방석이었다조선 건..

역사이야기

도둑이 궁궐 안까지 들어왔다, 그런데 끝내 잡히지 않았다|정조실록 1777년

조선실록 이야기 · 정조 1년도둑이 궁궐 안까지 들어왔다,그런데 끝내 잡히지 않았다1777년 7월 28일 밤. 정조가 머물던 존현각 가까이에서 기와와 모래가 떨어졌다. 이번에는 기록을 읽는 대신,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되어 그 밤을 통과해 본다.SCROLL 1777 · PALACE NIGHT실록 기록 기반 · 동선은 재구성 01체험형 재구성궁궐 안으로밤이 깊었다. 돌바닥을 밟을 때마다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들린다. 당신 앞에는 불이 거의 꺼진 회랑이 이어진다.실록은 침입자의 진입 경로와 얼굴, 목적을 기록하지 않았다. 지금 당신이 걷는 동선은 그 빈칸을 체험하기 위한 재구성이다.확실한 것은 하나다. 그날 밤 실제로 궁궐 안에 ‘도둑이 들었다’고 실록은 기록했다. 02존현각저 방에는 왕이 있다촛..

역사이야기

한양에 불이 붙었다, 세종은 집을 헐라고 했다|1426년 조선 대화재와 금화도감

조선실록 · 세종 8년 · 1426 한양에 불이 붙었다, 세종은 집을 헐라고 했다|1426년 대화재 1426년 2월, 거센 서북풍을 타고 한양의 불길이 수천 호의 민가로 번졌다. 이틀 뒤 조정은 단순히 불을 끄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집을 물리고 길을 넓히고 우물을 파고, 결국 화재를 전담할 관청까지 만들었다. SCROLL TO ENTER 1426 · 한성 대화재 01 2월 15일 · 점심 무렵 먼저 기록된 것은 불보다 바람이었다 세종실록은 이날 서북풍이 크..

역사이야기

궁궐 근처에 호랑이가 나타났다|조선은 왜 호랑이 전문부대를 만들었을까

조선 군사제도 · 한양 도성 · 착호갑사궁궐 근처에 호랑이가 나타났다|조선이 만든 호랑이 전문부대조선은 왜 호랑이를 잡는 데 전문 병력까지 따로 두었을까. 한양 도성과 산자락, 백성의 불안, 그리고 착호갑사라는 이름이 등장하기까지의 흐름을 따라가 본다. 조선의 착호갑사 01한양 도성 밖문제는 늘 산 아래에서 시작됐다조선에서 호랑이는 전설 속 짐승이 아니었다. 산길과 성곽 바깥, 마을 인근에서 사람과 가축을 위협하는 현실적인 공포였다.한양과 그 주변도 예외가 아니었다.02백성의 불안호랑이가 출몰하면 길이 먼저 비었다산기슭 마을에서는 해가 지기 전에 문을 닫고, 사람들은 외진 길을 피했다. 조선이 호랑이 문제를 군사와 행정의 문제로 다뤘던 이유다.그만큼 피해가 반복됐고, 단순한 포수 몇 명만으로는 대응이 어..